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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후기

남편이 보고 겪은 아내의 출산

작성자 콩이
작성일 18-10-19 23:47 | 5,554 | 0

본문

저는 제가 직접 임신하고 출산을 할 수 없는 남자이지만 이번 제 아내의 37주간의 임신과정을 함께 겪어온 남편입니다. 저는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한 번 남겨보고자 합니다.

저희는 대학교때 처음만나 4년여간의 오랜 연애를 거쳐 결혼하였고 잠시간의 행복한 신혼 후 2년만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아이를 좋아하여 5명까지도 낳고싶다는 생각이었고 저는 아이라고는 잘 다루지도 못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 서로를 약간씩 닮은 아이를 가진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라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결국 3개월여간의 준비 끝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큰 축복인 듯 합니다. 마음아픈 일이지만 최근에는 많은 장애요소들 때문에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남자, 혹은 여자에게 약간의 어려움이 있어 아이가 생기기에 어렵다는 말들을 하는데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크나큰 선물을 받게 된 듯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사정에도 병원에 갈 때면 항상 아내와 함께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서로가 함께 무언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항상 나아갈 수 있다는 특별한 첫번째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에는 조금씩의 변화라도 함께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저희의 태명인 콩이는 처음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보았을때 1cm도 안되는 작은 콩같이 생겼어서 귀엽게 지어주자는 의미로 정했던 우리만의 이름이었습니다. 어느덧 크기도 점점 더 커지고 뼈도 보이고 결국에는 손발 얼굴에 이르기 까지 더이상 콩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커졌을 때에도 항상 콩이였습니다. 함께 맞이했던 뜻깊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의 태교는 조금 독특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뜨게질과 같은 일반적인 태교를 하였었고 이를 아내에게 추천하였었는데 아내는 성격상 맞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예전부터 약간 와일드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아내에게 장시간 해야하는 정적인 활동은 스트레스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대신에 원래부터 취미가 있던 수학문제풀이나 수도쿠 등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수학을 엄마뱃속에서 많이 접했었기 때문에 우리 콩이도 나중에 수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약간은 있기도 합니다.

예정일은 11월 초.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 어느새 마지막달에 들어서서 아내는 배도 정말 눈에띄게 커졌고 발도 많이 붓고 평상시 운동신경이 굉장히 좋고 지구력도 뛰어났는데 확실히 움직임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음.... 저번주는 정말 독특한 주말이었습니다. 금요일아침쯤 이슬이 보인다고 하더니 애기를 낳고나서는 더이상 실외에서 식사는 어려울 것 같다고 언젠가 처갓집에서 해먹으려 구매한 바베큐 세트가 있는데 갑자기 그 바베큐를 해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막달이고 이슬이 보인 참에 활동을 하는게 부담이 되던 저는 집에서 쉬기를 추천했으나 꼭 먹고싶다고 하여 처갓집에 가서 이런저런 음식을 해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아내는 진통이 있다고 하며 휴대폰 앱을 보여주더라고요. 아직 규칙적이지도 않고 약한 진통이지만 새벽부터 집으로 출발해서 병원갈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간 병원에서는 양수가 이미 새는 중이고 바로 입원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전 9시에 병원을 간 아내는 10시경 바로 입원하게 되었고 저는 아내의 갈아입은 옷가지와 이주정도 전에 준비한 출산가방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출산가방을 준비하면서도 너무 빠른거 아니냐고 서로 웃고 이야기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출산준비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잘 모르는 제가 들어도 상황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양수가 완전히 터진 것도 아니고 약간 새어나간 상태에서 감염이 우려되니 유도분만을 하여야 하는데 아내의 자궁문은 하나도 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보아도 보통의 임산부들은 2cm나 많게는 7cm가량 열린 상태에서 출산하러 온다고 하더라고요.  아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열리는 것과 열리기 시작한 것에서 조금 더 여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해보아도 우리 아내의 경우에서 정말 고생할 것이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전날만 해도, 아니 아침만해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10시에 바로 수액과 촉진제를 맞게 되었고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수술을 위해 30분쯤 후에는 관장도 하더라고요. 1시간 반정도 지났을때 아내에게 조금씩이나마 진통이 강해지는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아마 조금씩 자궁문이 열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오쯤 태변이 섞인 양수가 나오게 되고 이 경우 태아가 양수를 먹을때 태변이 섞여들어가게 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길수 있으니 빠른 시간내 출산을 하여야 한다고 원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바깥으로 나올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 아기에게 급격한 변화를 주게되었으니 작은몸에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나 봅니다. 우선은 지금처럼 조금씩 진행해보자는 말씀에 기다리게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내의 주기적인 진통의 세기가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진통이 있어도 이런저런 잡담을 함께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던 아내가 진통이 올때면 이야기를 멈추고 고통을 참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는 운동신경이 저보다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인내심과 지구력도 저보다 뛰어나서 초산이어도 걱정말라고 나는 금새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던 아내였는데 저도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항생제 검사도 하고 오후 6시가 되도록 진통이 강하지기만 하였을뿐 자궁문은 2~3센치 가량 열렸을 뿐 진행 경과가 더디기만 할 뿐이라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태변이 섞인 양수를 먹는 아이도 걱정이고 이제서는 진통에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손에 힘을주어 잡는 아내가 너무 걱정스러웠습니다. 자정, 저희의 입장에서는 15시간이 지났을 무렵 아내의 맥박이 빠르고 숨도 이전과 달리 급하게 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만큼 진통이 강해졌겠죠. 간호사 분들도 혈압을 체크하는 주기도 빨라지고 상황만 보아서는 이제 곧 출산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자궁문의 열림은 우리 기다림을 야속하게도 너무나 더디게 진행되기만 했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진통을 덜어주는 무통주사라는 게 있습니다. 평상시 약도 잘 먹지않고 꺼리는 아내도 다행히 무통주사를 선택지에 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야간에 잠시 촉진제를 중단한 이후 이전과 달리 더욱 큰 진통이 아내에게 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신음소리만 내기도 하고 약한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두번정도의 주입만 할 수 있다는 무통주사는 최후까지 남겨놓고 싶어 하더라고요. 아프면 참지말고 맞으라는 원장님의 말씀에도 그리고 진통이 올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소리를 질러도 무통주사는 마지막까지 참는 아내의 모습에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국 진행이 아직 더디니 체력회복을 위해서라도 잠을 자기위해 맞으라는 말씀에 새벽 1시 30분 무통주사를 맞게 되었고 3시간가량 짧지만 조용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벽 4시 쯤, 약효가 약해지며 조금씩 나타나는 진통에 아내는 잠을 깨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 기다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쯤에도 7cm 가량밖에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습니다. 하루를 꼬박 새고 밤을 새도록 진통을 참던 아내도 2시간가량을 참다가 마지막 무통주사를 맞게 됩니다. 저는 정오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그리고 새벽4시 이후 두번째 무통주사 전까지 이 두번의 과정이 출산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아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두시간만이라도 그 고통을 대신 느껴줄 수 없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무통주사의 효력이 끝날때쯤 다시 촉진제를 맞게 되었고 이후는 진행이 이전보다는 약간 빨라졌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더욱 올라가 있었고 오전 10시쯤 이후로는 출산을 준비하게 됩니다. 진통이 올때는 아랫쪽으로 아이를 낳는 것 처럼 힘을주어 아이를 내려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통이 오는 와중에도 힘을 주어야만 한다니 이 과정중에 아내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왼쪽눈엔 혈관이 터졌는지 약간 빨갛게 되고 눈도 약간 돌출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만큼 이전에 경험한 어떤 것들보다 최대한의 힘을 내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나오면서 3번정도 회전한다고 합니다. 위를 바라보는 자세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조금씩 아이를 내리는데 1~2분마다 한번씩 온몸의 기운이 빠질정도로 힘을 주어야 했습니다. 중간중간 간호사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자세도 바꿔주셨지만 온전히 힘을 주는 사람은 아내와 함께 있는 저도, 간호사도, 원장님도 아닌 아내 혼자만이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순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항상 강하고 씩씩하던 아내가 기운이 하나도 없이 못하겠다고 몇번이나 이야기 했었습니다. 틀림없이 정신력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아내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제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그 과정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던 때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출산에서 힘을 줄 때 뒷 머리를 밀어주는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만은 저도 어느때보다 최선을 다해서 도우려 했었습니다.

10시, 드디어 골반에 아이의 머리가 위치하였다고 하였고 1시간 안에 출산하지 못한다면 아이의 스트레스로 수술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26시간가량 준비해온 우리의 고통스런 과정이 의미있기 위해서는 아내가 조금 더 힘을 내야만 했지만 조금 더 힘내라는 말을 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넘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연분만 할 수 있을까요, 수술해주세요 등의 포기섞인 말을 기운없이 내던 아내였지만 진통이 올때는 뒷목을 누르는 제 손바닥안으로 강하게 흐르는 핏줄이 느껴질 정도로 끝없이 힘을 짜내었습니다.

11시 10분쯤이 되었을까 저도 입밖으로 꺼낼 수 없지만 거의 포기 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될 때쯤 간호사분들이 분주해지시고 어느덧 분만준비가 갖춰지게 됩니다. 저는 이 때가 정말 꿈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넘게 밝게 켜져있던 방의 불이 꺼지고 약간 어두운 방의 불빛과 아이의 체온을 지켜줄 기구들, 원장님과 간호사분들이 수술복을 갖춰입으시고 탯줄을 자르는 과정을 저에게 설명해주시고 계셨습니다. 안될 줄 알았는데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내가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왔던 것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과 어려움에도 마지막 순간은 정말 짧았습니다. 순식간에 아이는 아내의 가슴위에, 그리고 제 눈앞에서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내는 저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하루쯤 지났을때 아내는 그 힘든 하루의 과정에서 고통이 어느정도였는지 그 부분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합니다. 저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내는 벌써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힘들고 포기의 생각까지 하고 있던 힘없던 그 때의 고통을 어느정도 잊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아내는 고통에 정말 힘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 힘든 아내의 모습도 보았지만 하루를 아침부터 꼬박 지내고 한밤과 새벽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 이르기 까지 끝없이 방문해주시던 간호사분들. 무엇보다 밤새 진행의 경과와 문제점, 그리고 희망적인 부분까지 명확하게 말씀해주시던 양현성원장님, 다음날 아침부터 출산까지 아무런 이상없이 잘 마무리해주신 이재규원장님까지 한부분이라도 부족하였다면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무리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특히 양현성 원장님에게 감사합니다. 휴일이고 당직이셔서 아침부터 함께하여 주셨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과정하나하나가 걱정이 될 저희를 위해서 끈임없이 와주시고 가감없이 출산의 경과를 설명해주셔서 믿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항상 해피본이라 하면 저와 제 아내도,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좋은 곳이라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가족의 행복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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